2015-03-15

베이그란트 스토리

유아스러운 <모모타로 전설>를 하고 나니, 어른스러운 게임이 하고 싶어 고른 게 <베이그란트 스토리>다. 옛날에 초반만 잠깐 해보고 전투가 생소해서 미뤄둔 게임을 10년 이상 끌다가 이제서야 잡은 것이다.
일러스트나 분위기 굿.
영화 같은 연출과 어른을 위한(야한 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진지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플스1 게임이지만, 지금 해봐도 혁신적이고 그래픽도 괜찮은 수준이다. 후속작이 안 나온 게 이상할 정도.
흔한 일본RPG와 달리 전투화면과 필드화면이 구분 없이 평상시 화면에서 바로 전투가 이루어진다. 전투하기 싫으면 적을 피해다니면 된다. 딱 내 스타일.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음침한 던전 안에서 퍼즐 풀기와 미로 찾기를 해야 한다는 점은 이 게임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매니아스러운 게임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게임성은 높지만,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스토리는 좀 난해한 면이 있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어떻게 전개되는지 왜 싸우는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엔딩을 봐도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그래도 같은 회사가 만든 <제노기어스>보다는 난해하지 않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삭막하다. 어두캄캄한 미로가 대부분이고, 여성 캐릭터가 나오지만, 주인공과 어떤 깊은 관계로 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좀 난해한 게임이긴 했지만, 완성도가 높아서 왜 이 게임이 패미통 잡지에서 왜 만점을 받았는지 해보면 느낄 수 있다. 다만 스토리가 좀 더 알기 쉬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특히 시드니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 왜 사지가 그 모양인지, 계획의 동기가 무엇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

2015-03-10

모모타로 전설 PS1

일본의 전래동화 모모타로를 소재를 한 RPG.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임인데, 이제서야 엔딩을 봤다.
이 시리즈는 나와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걸로 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모타로 전설1 (패미콤, X68000)
·모모타로 전설 터보 (PC엔진) - 패미콤판 1편의 리메이크
·모모타로 전설2 (PC엔진) - 1편의 3년 후 이야기
·신 모모타로 전설 (슈퍼패미콤) - PC엔진 2편을 대폭 리메이크. 1편의 6년 후 이야기
·모모타로 전설 (플레이스테이션, 윈도우) - PC엔진 1편(터보) 리메이크
·모모타로전설1→2 (게임보이) - PC엔진판을 기본으로 1, 2편 합본

위키피디아를 본 결과, 1편을 한다면 가장 하드웨어 스펙이 좋은 플스1판으로 하는 게 제일 좋겠다는 결론이 섰다.
모모타로는 냇가에 떠내려온 복숭아에서 태어난 소년이다. 일본에선 아주 유명한 전래동화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게임은 초반만 동화와 비슷하고 이후에는 여러 일본 전래동화와 섞어놨다. 어떤 장면은 성경의 모세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도 있다.
동화인 만큼 내용은 꽤 유아스럽다. 약간의 개그 코드가 귀여운 그림과 어울려서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픽은 매우 깔끔하고 밝은 느낌이다.
초반 해보고 저연령층에 어울리는 게임 같아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한 게 아까워서 엔딩까지 갔다.
천외마경 시리즈를 만든 허드슨답게 모모타로 전설도 일본의 전통색을 잘 담아냈다. 일본 곳곳의 축제도 게임에서 나온다. 특히 벚꽃 축제는 캐릭터의 표정들과 흩날리는 꽃잎이 어우러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 게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이었다.
만화 같은 그림체는 좋았지만, 대사에서 캐릭터의 개성이 별로 표현되지 않은 건 아쉽다. 등장인물들이 매우 단순하게 표현된다.
이야기는 복잡한 게 하나도 없다. 모모타로가 나쁜 귀신들을 물리치는 게 다다. 스토리에서 특별히 감동을 느끼긴 어렵다. 그냥 동화 보는 것 같다.
수수께끼 나오는 부분 말고는 별로 헤맬 곳이 없지만, 전투는 조우율이 높아서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시스템은 깔끔해서 흠잡을 건 없다.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게임 같지만, 아이들이 한다면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우정, 사랑, 정의... 이런 걸 메시지로 삼는 게임인데, 폭력이 그 수단이 된다.
귀신들은 주인공에게 맞아서 패배해야만 그 우정, 사랑, 정의를 몸으로 깨닫고 뉘우친다. ㅋㅋ 그렇게 해야 게임이 되겠지만, 교육적 효과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우정, 사랑, 정의보다는 강한 게 전부다라는 교훈을 준다.
마지막 왕은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조차도 맞고 나니 주인공이 옳다는 걸 알겠단다.
개인적으론 완성도에 비해 스토리가 너무 빈약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진 못하겠다. 이게 재미났으면 6년 뒤 이야기가 펼쳐지는 SFC판 신 모모타로 전설을 하려고 했는데, 딱히 이어서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별 부담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일직선 RPG라고 할 수 있다.

2015-03-03

판타시스타4 천년기의 끝에

판타시스타 4부작 시리즈의 완결작. 2편으로부터 1000년 후의 이야기다.
싸이제로님이 만든 MD용 비공식 한글판도 있는데, 나는 4편도 플스2 일본어판으로 깼다. 한글이 읽기 편하지만, 플스2판은 이동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쾌적하게 엔딩을 봤다.
4편은 전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고 조작 방식도 매우 편해졌다. 메가드라이브 최고의 RPG답다. 개인적으로 깔끔한 그래픽이 마음에 들었다.
전편들은 등장인물의 개성이 매우 부족했지만(기억나는 게 1편의 고양이? 캐릭터밖에 없음), 4편은 각 등장인물의 성격이 뚜렷해서 생기가 있다. 그리고 각 인물의 목적 의식이 분명하다. 전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해서 공감이 되지 않았으나 4편은 그런 부분에선 완성도가 높다.
 주인공은 무작정 정의를 위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신에게 왜 내가 당신이 내건 사명을 따라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그 장면에서 통쾌했다. 일본RPG에서 흔히 나오는, 사심도 없고 욕망도 없이 정의감만 넘치는 주인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4편은 시리즈 완결작답게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다크펄스가 어디서 왔는지도 밝혀지고 1000년마다 부활하는 걸 못 하게 아예 근원을 없앤다. 이제 판타시스타 세계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이 세계관에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서 5편이 안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론 2편에서 등장한 지구인 이야기를 더 끌여들여서 파격적으로 끌고 나가도 재미날 것 같은데 말이다.
모든 면에서 전편을 앞서지만, 스토리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2, 3편에서 보여준 비장함이나 놀라운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SF 요소도 1, 2편보다는 적게 느껴진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주무대는 일반 판타지스러웠기 때문이다. 평이한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은 느낌? 3편을 4편의 완성도로 리메이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4편은 1993년 기준으로 대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닌텐도의 드래곤 퀘스트5나 스퀘어의 파이날 판타지5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오히려 그래픽 쪽에는 점수를 더 주고 싶다. 그 게임들보다 앞서서 나왔다면 평가가 더 높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할 기회가 없었던 판타시스타 시리즈의 끝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엔딩 본 날 : 2015년 3월 3일

2015-03-02

판타시스타3 시간의 계승자

판타시스타 시리즈 중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3편이었다. 어린 시절 잡지 '게임뉴스'의 분석 기사를 보고 군침을 흘렸지만, 손에 넣을 기회가 없어서 지나친 게임이다. 그때 끌렸던 이유는 칼을 들고 서 있는 파란 머리의 주인공 모습이 강렬했고, 무엇보다 3대 가문으로 이어지는 멀티시나리오라는 점이었다. 이 3편을 하기 위해 먼저 1편과 2편을 클리어한 것이다.
1편과 2편은 플레이스테이션2 리메이크판이 있어서 편하게 했지만, 3편은 원작인 메가드라이브판을 그대로 이식한 것밖에 없었다. 게임보이 어드벤스판과 플레이스테이션2이 있는데, 게임보이 어드벤스에는 영문판밖에 없어서 플스2의 판타시스타 컴플릿 컬렉션에 있는 3편으로 시작했다. 그래픽이 메가드라이브판과 똑같은데 굳이 플스2판을 선택한 까닭은 이동속도 때문이었다. 옛날에 MD 에뮬로 3편을 돌려봤더니 이동속도가 너무 느려서 굉장히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문에 시작하는 걸 오랜 기간 주저했는데, 플스2판은 다행히 옵션에서 이동속도를 올릴 수 있다.
이동속도를 올렸다고는 하나 리메이크된 전편을 하다 3편을 하니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래픽이 메가드라이브 초창기 시절 수준인데다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불편했기 때문이다. 1990년 게임인데 어쩌랴. 그땐 사용자 편의성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리메이크된 전편들은 인터페이스가 편리하게 수정되었지만, 불친절한 설명이나 구성은 리메이크된 1, 2편이나 3편이나 똑같다. 요즘 게임들 같으면 단서가 되는 중요 대사는 다른 색깔로 나오거나 잊지 않도록 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옛날 일본 RPG들은 그런 게 없어서 대사 하나하나 무시할 수가 없다. 정보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조합해서 진행해야 한다. 옛날 RPG가 더 어렵고 머리를 더 쓰게 만든다.

그밖에도 2층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드문데 거의 다 쓸데없이 2층 건물이라는 점, 등장인물에 개성이나 성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밋밋하다는 점 등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요즘 게임들과 비교해서 흠을 잡자면 끝도 없다.

판타시스타3는 1, 2편과 달리 중세 판타지 배경에서 시작한다. 전편과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외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뒤로 가면 SF요소가 나타나면서 전편과 관련된 부분이 드러난다. 3편은 1편에 등장했던 팔마 후손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우주로 나갔을 때 지금까지 활약했던 무대가 별이 아닌 거대한 우주선이었다는 설정은 놀라웠다. 달이라고 생각했던 그것도 사실은...
3편의 재미있는 점은 어느 여성과 결혼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바뀐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결혼하면 그 아들이 주인공이 되는, 3대에 걸친 이야기다. 엔딩은 4가지가 있고, 이걸 다 즐기려면 결혼 상대 고를 때 세이브를 해놔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주인공 신의 엔딩을 본 뒤, 다른 시나리오를 위해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뺑뺑이 돌리기 미션과 높은 난이도, 밋밋한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
스토리에서 몇 군데 놀라운 점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개가 밋밋했다. 굳이 따지자면 2편보다 좋은 평가를 내리진 못하겠다. 꽤 흥미로운 설정과 장점이 있었는데도 그걸 잘 살리지 못해 아쉬운 게임이라고 할까.
인상적인 장면에서도 밋밋하게 지나가는 점이 아쉽다. 더 강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 마을에 가도 다 똑같은 건물처럼 전체적인 느낌이 밋밋하다. 특히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 느닷없는 감이 있다. 드래곤 퀘스트5처럼 두 명의 여인 사이에서 번민하게 되는, 둘만의 기억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매력이 드러나지 않으니 그냥 외모 보고 뽑게 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리메이크가 된다면, 살을 많이 붙여서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고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으면 한다. 걸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아까운 게임이다.
1, 2편의 끝판왕 다크펄스는 3편에서도 등장한다. 이 악마는 1000년마다 부활한다고 한다. 엔딩에서 조우한 팔마의 다른 후손들이 말한다. 앞으로 1000년 동안 잘 지내자고. 마치 다크펄스의 1000년 주기 부활을 염두에 둔 듯...

엔딩 본 날 : 2015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