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6

E-book 리더 SONY PRS-505

평소 이북(E-BOOK)에 관심이 많고 좋아한다. 이사할 때마다 많은 책을 옮기다 보면 짜증도 나고 가지고 다니는 책의 부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내 책장의 종이책들을 모두 TXT나 PDF로 바꾸면 작은 USB메모리 하나에 다 들어갈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PMP나 PDA로 이북을 보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나 문제는 액정이 발광체라 쉽게 눈이 피로해진다는 점이다. 종이책보다 시력에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전자잉크를 사용한 이북리더를 눈여겨보다 결국 소니 PRS-505를 샀다.
이 제품은 우리나라에서는 팔지 않는 제품인데, 우연히 새것을 파는 분이 있어 적당한 가격에 손에 넣었다.


처음 PRS-505를 받아봤을 땐 조금 실망했다. 메뉴속도가 느린 편이라 답답하고 화면의 느낌이 전자사전의 흑백액정 보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철 타고 다니며 보니 확실히 LCD액정보다는 눈이 훨씬 편하고 읽기가 좋다. 가독성이 종이책 수준은 아니더라도 신문지 수준은 되는 것 같다.


텍스트 파일뿐 아니라 만화도 볼 수 있는데, 스캔 파일의 질이 좋으면 쾌적하게 만화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컬러는 지원하지 않는다.


PRS-505는 한글을 공식 지원하지 않아서 한글을 편하게 보려면 따로 한글화를 해줘야 한다. 파일만 따로 받으면 한글화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지원하는 포맷은 TXT, PDF, LRF, JPG 등인데, 제대로 보기 위해선 원래 파일을 유니코드TXT나 LRF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조금은 귀찮아서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복잡한 과정을 감수한다면 글꼴도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온라인 서점 등에서 파는 이북 컨텐츠들은 현재로선 볼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어둠의 루트에 널려있는 이북들을 보게 된다. 이런 점이 이북 리더의 시장확대를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죽었다>라는 책에서는 소니 리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리더의 화면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각 페이지는 해당 버튼을 눌러야 넘어가는데, 유감스럽게도 각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1초가 걸리며 이 1초 동안 화면은 검게 변했다가 다시 환해진다. 어떤 이들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들은 독서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불평한다.

*인쇄책과 마찬가지로 소니 리더에도 검색 기능이 없다. 결국 이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없는 셈이다.

*아이팟의 경우는 사용자들이 각자 소장하고 있는 CD들을 아무런 추가 비용 없이 디지털화할 수 있다. 또한 무료로 불법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고, 아이튠즈에서 합법적으로 노래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소니 리더는 사용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활용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사용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적당한 전자 형식으로 쉽게 스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구나 아이팟에 견주어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을 곳도 많지 않다. 소니가 제공하는 커넥트 저장소에서 얻을 수 있는 책들은 턱없이 부족하고 싸지도 않다. 이북 리더가 성공하려면 오프라인 서점보다 책의 가격이 싸야 하고 훨씬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소니 리더의 화면 기술은 아직 완벽한 수준이 아니며 콘텐츠 제공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책 문화의 앞날을 향해 조금이나마 작은 진전을 이루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이북 리더는 아직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퍼진 기기이지만, 위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종이책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2008-10-26

게임보이

게임보이가 일본에서 나온다는 컴퓨터 잡지 기사를 보고 혹했다. 가지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게임기는 전에도 있었지만, 패미콤처럼 롬팩을 바꿔가면서 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패미콤을 가지고 있었지만, 패미콤은 반드시 TV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모님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게임보이라면 화면이 이미 달려 있으니, 언제 어디서나 (몰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한 엄청난 메리트 때문에 게임보이는 흑백임에도 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당시 인기게임인 슈퍼마리오도 있었고, SAGA 같은 RPG가 휴대용 게임기에서 돌아간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하지만 처음에는 국내에 물량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있다 해도 10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학생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헌데 동급생중 하나가 그 게임보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안 나는 "내 패미콤과 게임보이를 바꾸자. 롬팩도 많아. 컬러로 할 수 있구"라고 걔를 꼬셨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게임보이는 구할 수 없었고, 나의 게임기 역사는 패미콤에서 메가드라이브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나중에 돈을 모아 게임보이를 사게 되었는데, 당시 즐긴 게임이 <열혈경파 구니오군>과 <캡틴 츠바사VS>였다.

게임보이를 가지고 있던 동안은 실제로 많은 게임은 할 수 없었다. 현대에서 게임보이를 수입했지만, 유치한 게임 몇 개만 팔았고, 일본정품롬팩을 파는 매장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도 간신히 구한 게임은 <캡틴 츠바사VS>였다. 패미콤으로 <캡틴 츠바사2>를 워낙 재미있게 한 터라 그 이전 이야기를 다룬 <캡틴 츠바사VS>도 흥미진진하게 즐겼다. 게임보이지만, 애니메이션 효과는 놀라웠다.

나중에 잡지책에서 게임보이판 삼국지, 또 게임보이 화면을 확대해주는 렌즈를 보고 군침을 흘렸지만, 우리나라에선 구할 길이 없었다.

좀 지나자 펜티엄급 컴퓨터에서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게임보이 에뮬이 나왔고, 결국 슈퍼패미콤을 사기 위해 메가드라이브와 함께 게임보이를 팔고 말았다.

성능은 떨어지는 게임기였지만, 아무데서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인 기기였다.

2008-10-09

시대를 앞서간 PC엔진 듀오

 
일본 만화영화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PC엔진은 꿈의 게임기였다. 메가드라이브나 슈퍼패미콤과는 수준이 다른, 풍부한 음성과 애니메이션 처리가 아주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반포의 게임점에서 PC엔진 CD게임인 <천외마경2>와 <드래곤슬레이어 영웅전설1>의 오프닝 동영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요즘 기준에서 보면 별 거 아닌 동영상이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만화영화 수준의 애니메이션과 음성이 게임에서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고 멋진 일이었다. 이는 다른 게임기와 달리 CD-ROM을 채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게임기들은 기기내에서 나오는 조잡(?)한 배경음악인데 반해 PC엔진 CD게임들은 CD 오디오를 직접 재생해서 노래까지도 들려주었다. 8비트 게임기였지만, 막강한 애니메이션 효과와 음성 덕에 기존 게임기를 훨씬 능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원래 PC엔진은 별매인 CD-ROM을 본체에 끼워서 사용하는 게임기였는데, 새로 나온 PC엔진 듀오는 멋진 디자인에 CD-ROM과 일체형으로 나와 인기를 모았다. 듀오의 디자인은 지금 관점에서 봐도 굉장히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본체와 게임CD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학생인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시간이 지나 슈퍼패미콤과 UFO의 조합이 지겨워질 무렵, PC통신 장터에 PC엔진 듀오와 슈퍼패미콤&UFO를 바꾸자는 글이 올라 바꾸게 되었다. 교환날짜가 94년 5월로 기억하는데, 한국축구대표팀과 카메룬 사이의 1차평가전이 있던 날이었다. 좋아하는 축구 시청도 제쳐두고 PC엔진 듀오가 고속버스 화물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전전긍긍하다 2시간 늦게 받았을 때 감격이란!! 그 뒤 슈퍼패미콤과 UFO를 내려보내고 집에서 듀오를 즐겼다.

듀오는 패미콤처럼 복사게임이 존재하지 않아 정품게임CD를 살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게임구매에 신중을 기했고 UFO 때처럼 많은 게임을 할 수는 없었다. 만일 당시에 컴퓨터 CD-RW가 있었더라면 복사CD가 널리 퍼졌을 것이다.

당시 즐겼던 게임은 <야와라>, <건버스터 vol.2>, <마크로스2036>, <에메랄드 드래곤>, <도키메키 메모리얼>, <천외마경2>, <랑그릿사> 등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어를 잘 못해서 사전을 찾으며 열심히 했다. 하지만 유지비가 많이 들고, 게임CD도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슈퍼패미콤&UFO로 다시 교환하고 말았다. 이때 교환한 UFO는 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모델이라 결과적으로는 이익을 본 셈이었다.
또 PC엔진 게임들은 일본어를 모르면 즐기기가 어려운 어드벤처나 RPG게임이 대부분이라 액션이나 스포츠게임을 좋아하는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즐기기엔 맞지 않았다. 그들은 "PC엔진 듀오는 너만을 위한 게임기야" 하면서 슈퍼패미콤의 재영입을 반겼다.

금새 떠나보낸 것이 아쉽지만, 기존 게임기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 시대를 앞서간 게임기였다.

2008-10-03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

내가 가졌던 게임기 중 최고로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기를 꼽으라면 닌텐도의 <패미컴>이다. 그때까지 MSX1의 저용량 게임을 주로 즐기던 나에게 패미컴의 다양한 게임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드래곤볼Z 시리즈>, <록맨3>, <캡틴 츠바사2>, <열혈고교 시리즈>, <닌자용검전>,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SD건담 시리즈>, <슈퍼 마리오3>, <삼국지1> 등이 이때 밤새면서 즐겼던 게임이었다.

세월이 지나 8비트 게임기 시대가 가고 16비트 게임기 시대가 왔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였다. 확실히 그래픽은 패미컴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지만, 게임이 다양하지 못하고 비싸서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쉽게 보급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메가드라이브 게임이 늘고, 가격도 10만원 초반으로 떨어지자 동생과 나는 가진 돈을 합쳐서 메가드라이브와 조이스틱 그리고 <에어로 블래스터>, <헤어초크 츠바이>를 샀다.


패미콤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픽과 음악이 나를 즐겁게 했다.

메가드라이브에서 재밌게 즐겼던 게임을 꼽으라면, <헤어초크 츠바이>, <삼국지2>, <슈퍼대전략>, <레슬볼>, <샤이닝포스>, <썬더포스3>, <엘레멘탈 마스터>, <YS3> 등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장 사고 싶었던 게임기는 메가드라이브가 아닌 슈퍼패미컴이었다. 왜냐하면 패미컴 시절 즐겼던 대작 게임들의 속편이 슈퍼패미컴으로 속속 나왔고, 본체의 디자인이나 성능도 메가드라이브보다 앞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드래곤볼Z 초사이야인 전설>이 슈퍼패미컴에 있다는 점이 너무나 끌렸다. 그러나 20만원에 육박하는 본체 가격과 복제팩이 없어 비싼 정품롬팩 가격은 학생인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슈퍼패미컴 게임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메가드라이브 게임은 그 수가 슈퍼패미컴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또한 닌텐도의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게임이 슈퍼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 양쪽에 나와도 슈퍼패미컴판에는 '슈퍼'가 붙어서 나왔기 대문에 뭔가 더 좋아보였다(게임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RPG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할만한 RPG가 별로 나오지 않는 메가드라이브는 20% 정도 부족한 게임기였다. 스퀘어, 에닉스, 캡콤, 코나미 같은 제작사들도 슈퍼패미컴에만 좋은 게임을 냈다. 메가드라이브에는 세가를 비롯한 몇몇 제작사만이 고군분투하고 있어서 게임 발매수가 딸렸다.


당시 인기 최고였던 <스트리트 파이터2>도 슈퍼패미컴에서 가장 먼저 출시되고 메가드라이브에는 한참 지나서야 나왔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다만 처리속도는 메가드라이브가 더 나았다. 그것은 나중에 슈퍼패미컴으로 <대전략 익스퍼트>를 해보고 알았는데, 컴퓨터의 처리속도가 메가드라이브의 <슈퍼 대전략>에 견주어 현격하게 느렸다. 그래서 메가드라이브에는 빠른 처리속도가 필요한 슈팅이나 엑션게임이 많았다.

요즘 에뮬로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 게임을 해보고 느낀 것은 메가드라이브 게임기 자체가 슈퍼패미컴보다 그리 떨어지는 기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색감은 개인적으로 어둡고 어른스러운 메가드라이브 쪽이 마음에 든다. 색감과 분위기가 어두운 편인 <파이널 판타지6>의 경우에는 슈퍼패미컴보다는 메가드라이브에 더 어울리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패미컴만큼 게임들이 더 다양하고 나오고, 세가가 스퀘어나 에닉스 둘 중에 하나만 잡았어도 당시의 나한테서 내쳐지지는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게임기이다.

2008-08-26

드래곤 퀘스트5 DS


슈퍼패미컴판, 플레이스테이션2판을 거쳐 닌텐도DS판까지 해봤다. 같은 게임을 세 번이나 해본 건 드퀘5가 유일하다. 그만큼 좋아하는 RPG이기도 하다.

옛날 슈퍼패미컴판으로 처음 해봤을 때는 일본어 실력이 모자라서 게임월드 공략에 의지했다. 그때는 세세한 대사는 거의 상상하거나 일본어사전을 뒤져가며 어렵게 어렵게 했는데, 그런데도 상당히 감동을 받으면서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음악이 매우 듣기 좋고 수준이 높다.

DS판은 슈퍼패미컴판과 견주면 상당히 좋은 그래픽을 보여준다. 물론 플레이스테이션2판보다야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2판은 캐릭터가 너무 크고, 드퀘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서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다. DS판은 드퀘7편과 비슷한 느낌이라 적당하게 좋아진 느낌이다.

DS판에서는 데보라라는 결혼상대자가 추가되었는데, 억지로 넣었기 때문에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비앙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프로라는 예쁜데다가 친절하지만, 데보라는 말도 막 하고 심한 공주병환자이다. 스토리로 볼 때는 주인공이 그 여자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앞선 두 여자는 모두 해봤기 때문에 나는 데보라를 골랐다. 카지노 배에서 결혼하는 점과 자식들 머리색이 검정색이라는 거 말고는 스토리상 별 차이는 없다.


드래곤퀘스트5의 명장면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멋진 연출이다. 또 주인공이 노예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하다 한 나라의 왕이 되고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는 RPG는 흔치 않다. 전설의 용사가 주인공이 아닌 자식들이었다는 점도 작은 반전이었다. 어른이 봐도 참 감동적이면서도 심오한 스토리이다.

스토리만큼은 드퀘 시리즈 최고라 평가받는 5편. 과연 5편의 아성을 넘을 수 있는 작품이 후속작 중에 나올지.

2008-07-20

미니노트북 ASUS EeePC 901



이번 달에 지른 미니노트북 ASUS EeePC 901.
용도는 침대에서 뭔가 생각났을 때 또닥또닥 글쓰기용 또는 회의용이다. 14인치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데, 너무 무겁고 배터리도 얼마 안 가서 불편하던 차에 구미에 딱 맞는 이 놈이 나타나서 질렀다. 배터리 5시간 지속에 무게도 1.1킬로그램이라 부담없이 가방 안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케이스가 지문이 많이 묻길래 소장하던 MSX 스티커를 붙여줬다. 키보드는 다 좋은데, 오른쪽 쉬프트키가 작아서 오타가 나고, 터치패드 OFF 버튼이 없어 조금 불편하다. 적응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하드디스크가 아닌 SSD가 장착되어 있는데, 배터리 오래 가고 소음이 없는 대신에 용량이 메인 4기가, 세컨드 8기가로 매우 적다. 하지만 윈도우프로라이트 깔고 SP3까지 깔았는데, 1기가가 넘게 남아서 그럭저럭 쓸만하다. MS오피스, 아래아한글, 포토샵, 윈엠프, KMP 등 모든 유틸리티는 D:나 SD카드에 깔았다. 어차피 워드머신으로 샀기 때문에 지금 용량으로도 큰 부족함은 없다.

백수생활백서


주인공은 20대 중반의 백수 아가씨이다. 아무런 직업도 없고 구할 생각도 없으며 결혼할 준비도 하지 않는다. 유일한 취미는 책 읽기이며 아르바이트도 책을 사기 위해 한다.

온종일 책만 읽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하다는 사고 방식.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다. 주인공의 친구들도 평범하지 않다.

그럭저럭 재미있는 소설이었지만, 작가가 좋아하는 소설 구절이 마구 인용되어 나오는데, 그 빈도가 잦아서 옥의 티다.

기억에 남는 글귀
인형처럼 속눈썹이 긴 커다란 눈, 오뚝한 콧날, 달걀형의 얼굴이 예쁘다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나는 이 모습 이대로의 나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을 뿐더러 이 정도의 내가 제일 편하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바깥에서 살고 싶다.

어떤 한 가지에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면 다른 일들은 모두 조금씩 사소해진다. 이를테면 밥 한 끼 거르는 일은 대수롭지도 않고 남의 비난 따위도 우스워진다는 얘기다.

옷이나 사면서 행복해하는 여자. 비싼 옷을 사려고 심장을 팔아먹는 그런 여자는 더더구나 되고 싶지 않다.

2008-06-02

사무라이 스피리츠 무사도열전 PS


옛날 오락실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대전 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가  다른 장르도 아닌 RPG로 나온다는 게임잡지 기사를 봤을 때 상당히 놀랐다. 당시 네오지오란 게임기에는 액션이나 슈팅게임만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의외였다.(지금 생각하면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던 네오지오가 CD머신으로 거듭나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일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래도 인기 캐릭터가 등장하는 RPG라는 점 때문에 무척 끌렸고, 지면으로 공개된 그래픽도 100메가 쇼크 네오지오답게 훌륭했다. 하지만 당시 네오지오는 게임팩 가격만 해도 20만원이 넘는 비싼 게임기였기 때문에 군침만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네오지오가 망하자 <무사도 열전>은 네오지오 처음이자 마지막인 RPG로 남게 되었고, 나는 이 게임을 까맣게 잊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 게임이 플레이스테이션판으로도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기대와 달리 악평이 자자해서 미루고 있다가 틈 날 때 해봤다.


크게 시나리오가 두 가지 있는데, 좋아하는 주인공을 선택해서 진행할 수 있다. 나는 겐주로를 골랐는데, 알고 보니 겐주로는 성격이 더러워서 동료가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오로지 겐주로 한 명으로 엔딩까지 갔다.

이 게임의 그래픽은 RPG로서 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동시대를 주름잡았던 슈퍼패미콤의 RPG들보다 더 뛰어난 대용량 그래픽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RPG에 많이 나오는 짜리몽땅 캐릭터들이 아니라 필드와 전투장면에서 모습이 동일한 어른스런 캐릭터들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마을이나 인물들도 세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고 음악도 좋으며, 캐릭터들의 음성도 나온다. 그러나 이 게임의 최대 단점은 전투이다.


대전게임에 나왔던 멋진 기술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점은 좋았으나 적을 만날 확률이 너무 높고, 전투 시작할 때마다 지체되는 로딩들이 짜증나게 한다. 더욱이 선제공격은 거의 적이 먼저 하기 때문에 전투에는 늘 시간이 걸린다. 이 점 때문에 도중에 패드를 집어던지고 CD를 구석에 쳐박아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나마 나는 극악의 로딩인 새턴판을 피해가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마을이나 집을 출입할 때 왜 <나갑니까? 예/아니오>로 물어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은근히 귀찮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스토리. 굴곡이 없고 캐릭터 간의 갈등이나 이야기가 부족하다. 사무라이 스피리츠라면 이야기거리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텐데, 내용이 너무 진부하다. 전투 때에는 다른 캐릭터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도와주는데, 왜 도와주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불편한 전투 로딩과 스토리에 더 힘을 기울였다면, 희대의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게임인데, 대전게임의 인기를 등에 업은 단순한 캐릭터 게임이 되어서 아쉽다. 이 좋은 재료로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었던 것이냐, SNK.

2008-05-31

Forget me not -파렛트-


제4회 아스키 엔터테이먼트 소프트웨어 컨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파렛트>의 플레이스테이션판. 원래는 <RPG쯔꾸르95>라는 툴로 만들어진 아마추어 작품이이지만,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식되면서 제목에 Forget me not이 붙고, 사운드와 그래픽이 파워업되어서 출시되었다.

신선한 연출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만으로도 90점은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게임형식 또한 무척 독특하다. 정신과 의사 시안이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의 정신으로 들어가 퍼즐조각 맞추듯이 기억을 되찾게 만드는 것이 목적으로,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난다.


소녀는 처음에 '빨간색' 이외에는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그것은 하나의 방으로 표현되고,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이나 소품들은 실루엣만 나온다. 소품들을 만지면 기억이 되살아나게 되고 그것을 실마리로 또 다른 기억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방과 방 또는 장벽을 통과할 때는 소녀의 정신력이 하나씩 소비되는데, 이것이 다 떨어지면 처음 방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 제약이 이 사이코스릴러물을 게임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픽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음악과 효과음이 긴장감을 조성해서 공포영화 분위기가 난다. 살인사건이 소재라서 분위기도 음침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스토리가 인상적인데, 깊이가 있으면서도 무척 난해하다. 다르게 말하면 불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끝까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상상하고 추측해야 한다.

거기에 추리를 방해하는 장치가 하나 있고, 마지막에는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도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게임이라 생각한다. 엔딩 보고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돼서 단서들을 되새김질했다. 영화로 치면 <메멘토>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해석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결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게임이니 일본어를 아시고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플레이를 권한다.

원작 PC판 다운로드 링크 : http://www.enterbrain.co.jp/gamecon/no4/01.html

2008-05-30

센서블 사커 MEGA-CD

486 컴퓨터 시절에 가장 많이 했던 축구 게임이 바로 센서블 사커이다. DOS용으로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정용 게임기판으로도 있어서 놀랐다.

PC, 아미가, 아타리, 슈퍼패미콤, 게임보이, 메가드라이브, 게임기어, 세가마스터시스템.... 등
패미콤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기용으로 나와 있다.

심지어 메가CD판으로도 있는데, 신기해서 플레이를 해봤다.


오프닝이 동영상으로 처리되는 점이 PC판이나 다른 게임기판과 다르다. 뭐 그리 멋지다고는 할 수 없지만, 메가CD라는 걸 생색내는 듯 하다.


유럽 국가 대표 모드와 클럽팀 모드를 고를 수 있다. 커스텀팀 모드에서는 자기만의 팀을 만들 수도 있다. 클럽팀 모드를 고르면 클럽대항전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없어진 컵 위너스컵도 있다. 각각 경기방식이 다르다. 홈앤어웨이 토너먼트도 있고, 리그전도 있다. 옵션에서는 난이도나 날씨변화, 시간 등을 조절할 수 있다.


맨체스터를 고르면 전설적인 클래식 선수들이 엔트리에 있다. 웨일즈의 영웅 긱스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수 이름의 스펠링을 조금씩 바꿔 놨다. 아무래도 저작권  때문에 이렇게 한 것 같은데, 먼저 나온 PC판에서는 실명으로 나온 걸로 기억한다. 뭐, 마음에 안 들면 일일이 에디트해주면 된다.

게임 전에는 포메이션을 고를 수 있으며, 별 표시가 되어 있는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속도가 빠르고 슛이 좋다.


메가CD판 아니랄까봐 게임 시작 전에도 경기장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오히려 귀찮다.


센서블 사커의 그래픽은 486 시절에도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점은 메가CD판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도 눈꼽만한 캐릭터들이 아기자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재밌다.
게임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전개된다. 공이 있는 곳이면 우르르 몰려가서 뻥뻥 내지른다. 오프사이드 같은 건 없다. 팀 전술이 무시되는 거의 동네축구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작은 무척 간단해서 슛과 패스 두 개면 끝난다. 그래도 옐로우/레드 카드가 있고 골 나면 리플레이도 보여준다. 헤딩은 다이빙 헤딩슛만 있다.


슛은 커브가 가능해서 이걸 잘해야 골도 잘 넣을 수 있다. 골키퍼가 귀신 같이 잘해서 강슛이나 커브 슛 아니면 골 넣기 힘들다. 측면 돌파해서 크로스 올리는 등의 전술은 거의 통하지 않아 무의미하다. 난이도가 EXPERT면 아무리 최강팀을 골라도 첫경기에서는 대패 당하기 일쑤다.

오프닝과 시합 전에 질 떨어지는 동영상 추가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메체가 CD인 만큼 사운드는 훌륭하다. PC판보다 함성소리도 섬세하고, 배경음악도 근사하다. 사실 센서블 사커는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 효과가 인기의 요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픽을 비롯한 다른 부분에서는 PC판과 큰 차이가 없어서 아쉽다.

요즘 축구 게임과 견주면 단순하기 그지 없는 게임이지만, 잠깐 시간 때우기에는 지금도 괜찮은 게임이다.

2008-05-25

90년대 초중반 축구 게임들

월드 클래스 사커 이탈리아 90 (1990년 DOS)
잡지 게임월드에서 분석해줬던 DOS용 게임이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똑같은 조편성으로 즐길 수 있으며, 당연히 우리나라도 나온다.

우리 집에는 PC가 없어서 친구네 PC(아마 286)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팀은 참가팀 중 가장 형편없는 능력치를 받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우승하기란 무척 어렵다. 아르헨티나나 독일 등의 강팀들은 선수들 스피드가 빠르고 슛팅도 강하다. 하지만 골이 잘 들어가는 위치가 있어서 그걸 알게 되면 게임이 쉬워진다.
당시 PC에는 축구게임이 많지 않은데다, 월드컵 인기에 힘입어 복사 디스켓이 많이 퍼졌다.

센서블 월드 오브 사커 (1996년 DOS)

줄여서 <센서블 사커>라고 알려졌다. PC통신 시절 1메가가 조금 넘는 이 게임을 내려받는 데 1시간이나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국가대표 중심의 다른 축구 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국가대표팀뿐 아니라 유럽 챔피언스 리그나 UEFA컵에 참가하는 많은 클럽팀들이 실명으로 나온다. 칸토나나 시어러의 이름도 볼 수 있다. 스타 선수는 별 표시가 되어 있으며 다른 선수들보다 스피드나 슛이 좋다.

캐릭터도 작고 조작도 무척 간단하지만,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크고 현장감이 있어서 유럽 축구의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골 들어가는 패턴을 알게 되면 게임이 무척 쉬워진다.

이 게임의 장점은 선수나 팀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로스터 편집이 가능한 축구 게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능력치는 바꿀 수 없었지만) 나중에 후속작이 나왔는데, 3등신 캐릭터 보고 실망해서 바로 접었던 기억이 난다.

GOAL!! (1992년 패미콤)

패미콤에서 뭐 할만한 축구 게임 없을까 찾다가 복사팩을 사서 해본 게임이다. <러싱비트> 시리즈나 B급 스포츠 게임으로 알려진 자레코 사가 만들었다. 특이하게도 쿼터뷰 형식을 채용했고 선수들 움직임도 세밀한 편이다. 옵션에서는 오프사이드 룰 적용여부를 정할 수도 있다.

월드컵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슈퍼컵 모드가 있어서 재미있게 즐겼다. 그런데 한국팀은 안 나오고, 그때까지 월드컵에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한 일본팀은 나온다. 그래서 나는 다른 유럽팀을 골라 일본에게 골세례를 퍼부었다.

골 넣는 패턴이 단순하지만, 패미콤 축구 게임 중에서는 그럭저럭 상위권으로 꼽을 수 있는 게임이라 생각한다.

테크모 월드컵 (1992년 메가드라이브)

축구 게임이 거의 없던 메가드라이브의 구세주. 반포에 있는 게임점에서 복사팩을 어렵사리 구해서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팀도 나오고 월드컵(24개국)처럼 진행된다. 경기장이 작은 게 흠이지만, 움직임도 괜찮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이다.

슈퍼 포메이션 축구2 (1993년 슈퍼 패미콤)

UFO 디스켓으로 플레이했던 게임이다. 휴먼 사에서 만들었는데, 게임을 참 깔끔하게 만들어서 좋아했던 제작사이기도 하다. 진행이 무척 스피디하며 골도 시원하게 터진다. 팀을 선택해서 한 팀 한 팀 격파하는 모드가 있었는데, 동생과 둘이서 같은 편 먹고 밤새도록 했다.

마지막 팀을 깨면 우승 장면이 나오다가 갑자기 공이 날라오면서 최강팀의 도전을 받게 된다. 그 팀은 선수들 능력치가 최강이라서 이기는 데 무척 애먹었다.

템포도 좋고 액션성도 넘치는 좋은 게임이지만, 선수들 이름이 실명이 아닌 점과 한국팀이 나오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J리그 익사이트 스테이지 96 (1996년 슈퍼패미콤)

94년도에 처음 나왔고 그 다음에 약간 업데이트되어서 96년도판이 나왔다. J리그 선수가 실명으로 등장하며 노정윤도 나온다. 조작성도 좋고 슛도 통쾌해서, 2인용 축구 게임으로서는 당시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축구 게임에는 없는 실내축구 모드가 있다는 점이 무척 이채로웠는데, 주위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코너킥이나 골킥이 없다. 또 연장전에 들어가면 골든골이 터질 때까지 영원히 계속된다. 진행도 빠르고 골도 멋지게 터져서 접대용으로 아주 좋은 모드이다. 나중에 게임보이판으로도 나왔는데, 슈퍼패미콤판보다는 많이 싱겁다.

에이스 스트라이커 - 사상 최강의 리그 세리에A (1995년 슈퍼패미콤)

당시 미우라 가즈요시라는 일본선수가 세리에A 제노아팀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이다. 세리에A의 모든 선수가 실명으로 등장하는 점이 좋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티스투타, 베르캄프, 시뇨리, 보반, 사비체비치, 바죠 등의 선수도 등장한다.

골 세러머니에 공을 많이 들인 게임이다. 골 넣으면 피오렌티나의 바티스투타는 골 깃대 잡으러 가고, 라치오 선수들은 서로의 발을 잡고 기어다니며, 미우라는 춤을 춘다. 그걸 보기 위해 각 팀의 유명 선수로 골을 넣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래픽도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게임이지만, 골 넣을 때 골망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없어서 골의 느낌이 반감되는 점이 아쉽다.

실황 월드 사커 퍼펙트 일레븐 (1994년 슈퍼패미콤)

<위닝 일레븐>의 먼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이 게임으로 코나미 사는 당시 가정용 축구 게임 시장을 평정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회사에선 엄두도 못 냈던 음성 실황 중계와 고차원의 그래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신기한 음성해설, 응원구호, 날씨변화, 세세한 선수 능력치, 특징을 살린 선수 외모 등, 다른 축구 게임과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더욱이 헛다리 집기, 사포, 스루패스 등의 개인기와 세세한 전술 적용도 가능했던 점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실명이 아니라는 점이 옥의 티지만, 편집이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아시아최종예선부터 월드컵까지 할 수 있었으며, 월드컵 예선에서 실제로 있었던 상황을 재현해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모드도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실황 월드 사커2 파이팅 일레븐 (1995년 슈퍼패미콤)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나온 2편. 슈퍼패미콤으로 가장 오래 즐겼던 축구 게임이다. 슈퍼패미콤 최고의 축구 게임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중앙선 근처에서 뻥 찬 것이 가끔 들어가기도 하는 등의 버그가 옥에 티였다. 나중에는 UFO나 에뮬 사용자를 위한 선수 이름 한글 패치도 나와서 우리나라 국가대표축구 선수 이름을 한글 실명으로 볼 수도 있다.

옛날 축구 게임들은 골 나오는 패턴이 비슷해서 얍삽이만 깨우치면 게임이 무척 쉬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닝이나 피파 시리즈가 있기까지는 앞선 게임들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2008-05-12

랑그릿사5 PS


<데어 랑그릿사>를 재밌게 해서 3, 4, 5 중 뭘 할까 고민하다가 악평이 자자한 3편,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드는 4편을 뛰어넘고 5편을 해봤다. 초기작들과 달리 1턴씩 번갈아 진행되는 턴제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초기작들의 시스템이 단순하니 더 좋아 보인다.
처음 시작하면 주인공이 깨어나는데, 그의 시선에 먼저 들어온 것은 여주인공의 가슴. 가정용 게임인데 그림체가 야시시하다. 전투 장면에서도 여자 병사의 비명소리가 굉장히 섹시하게 들린다고 해야 하나, 신음소리처럼 들린다.


초반에는 꽤 박진감 있고 기대가 되는 전개였는데, 갈수록 이야기가 늘어진다. 클론이었던 주인공이 세계평화를 지킨다는 진부한 스토리. <데어 랑그릿사>처럼 분기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뭣 때문에 남의 대륙 일에 끼어들고, 세계평화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랑그릿사의 마지막 작품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등장했던 대륙들이 다 등장하고 4편의 주인공도 출연한다.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닭살 돋는 말 한 마디씩 한다. 우웩.

<랑그릿사1>이나 <데어 랑그릿사>에서는 보젤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적 캐릭터가 있었지만, 5에서는 멋진 인물이 없다. 그러면 미소녀들과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대사 선택 몇 번에 쉽게 사랑에 빠진다. 개연성 떨어지는 러브 라인.


EPSXE로 했는데, 거의 완벽하게 실행되지만, 왠일인지 엔딩송이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5편을 끝으로 랑그릿사 시리즈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4편은 분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언젠가 건드려봐야겠다.

2008-05-10

메탈기어2 스네이크의 복수 FC


<스네이크의 복수(Snake's Revenge)>는 1990년, 영문판으로 북미에서만 발매되었던 패미콤용 메탈기어의 속편이다. 이 게임은 지금도 걸작으로 꼽히는 MSX2판의 <메탈기어2 솔리드 스네이크>의 패미콤 이식판……은 아니고, 원작자인 코지마 히데오가 관여하지 않은 패미콤만의 오리지널 작품이다.

패미콤으로 나왔던 <메탈기어>가 일본에서는 반응이 그냥 그랬지만, 해외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 팬을 위한 패미콤만의 속편이 나온 것이다.

이 게임의 제작 당시, 코지마 히데오는 퇴근길 전철에서 제작자에게 "실은 메탈기어 속편을 만들고 있다. 근데 코지마 당신이 만든 진짜 속편도 보고 싶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데, 거기에 자극을 받은 코지마가 하루만에 속편의 줄거리를 쓰고 그것이 바로 MSX2판 <메탈기어2 솔리드 스네이크>가 된다. 배다른 형제라고 해야 하나.


패미콤의 <스네이크의 복수>는 정통 속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해외 팬으로부터도 번외편으로 취급받고 있다. 또 해외판매용이라 그런지 캐릭터나 그래픽도 양키 센스가 넘친다. 등장인물이 다 우락부락하고, 솔리드 스네이크의 모습도 위의 그림처럼 짧은 머리의 근육남이다.


잠입액션게임이란 게임진행방식은 전작들과 비슷하지만, 헬리콥터가 공격해오고, 적의 증원도 많아서 무척 어렵다. 또한 전작과 같은 퍼즐 요소가 많지 않고, 자백가스, 조명탄, X선탐지기, 도청 마이크 등 기존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이템이 추가되어 있다.
이 게임의 프로그래머 중에는 패미콤판 <혼두라>나 <악마성 전설>을 담당했던 사람들도 있는데, 그 탓인지 게임 내에서도 스네이크가 마치 혼두라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중간에 위와 같은 횡스크롤 화면이 나오는데, 영락없이 <혼두라> 느낌이다. 횡스크롤 채용은 메탈기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는 전작들에 견주어 심심한 편이지만, '배신자'는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왕은 스네이크의 숙적 빅보스……"3년전 넌 메탈기어1을 파괴하고 나를 사이보그가 되게 했지. 지금 그 앙갚음을 해주마!"
빅보스가 거대 사이보그가 되는 충격의 전개를 볼 수 있다. 뭐, 공식 스토리로 인정받지는 못하겠지만.


전작들과 견주면 걸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 게임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완성도라고 할 수 있다. 외주 업체나 해외 스탭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코나미 스탭들이 만든 게임이기 때문이다. 플레이 전개가 빨라 쾌적하고, 무엇보다 기쁜 점은 패미콤판 <메탈기어1>과 달리 메탈기어가 나온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