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6

게임보이

게임보이가 일본에서 나온다는 컴퓨터 잡지 기사를 보고 혹했다. 가지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게임기는 전에도 있었지만, 패미콤처럼 롬팩을 바꿔가면서 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패미콤을 가지고 있었지만, 패미콤은 반드시 TV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모님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게임보이라면 화면이 이미 달려 있으니, 언제 어디서나 (몰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한 엄청난 메리트 때문에 게임보이는 흑백임에도 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당시 인기게임인 슈퍼마리오도 있었고, SAGA 같은 RPG가 휴대용 게임기에서 돌아간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하지만 처음에는 국내에 물량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있다 해도 10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학생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헌데 동급생중 하나가 그 게임보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안 나는 "내 패미콤과 게임보이를 바꾸자. 롬팩도 많아. 컬러로 할 수 있구"라고 걔를 꼬셨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게임보이는 구할 수 없었고, 나의 게임기 역사는 패미콤에서 메가드라이브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나중에 돈을 모아 게임보이를 사게 되었는데, 당시 즐긴 게임이 <열혈경파 구니오군>과 <캡틴 츠바사VS>였다.

게임보이를 가지고 있던 동안은 실제로 많은 게임은 할 수 없었다. 현대에서 게임보이를 수입했지만, 유치한 게임 몇 개만 팔았고, 일본정품롬팩을 파는 매장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도 간신히 구한 게임은 <캡틴 츠바사VS>였다. 패미콤으로 <캡틴 츠바사2>를 워낙 재미있게 한 터라 그 이전 이야기를 다룬 <캡틴 츠바사VS>도 흥미진진하게 즐겼다. 게임보이지만, 애니메이션 효과는 놀라웠다.

나중에 잡지책에서 게임보이판 삼국지, 또 게임보이 화면을 확대해주는 렌즈를 보고 군침을 흘렸지만, 우리나라에선 구할 길이 없었다.

좀 지나자 펜티엄급 컴퓨터에서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게임보이 에뮬이 나왔고, 결국 슈퍼패미콤을 사기 위해 메가드라이브와 함께 게임보이를 팔고 말았다.

성능은 떨어지는 게임기였지만, 아무데서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인 기기였다.

2008-10-09

시대를 앞서간 PC엔진 듀오

 
일본 만화영화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PC엔진은 꿈의 게임기였다. 메가드라이브나 슈퍼패미콤과는 수준이 다른, 풍부한 음성과 애니메이션 처리가 아주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반포의 게임점에서 PC엔진 CD게임인 <천외마경2>와 <드래곤슬레이어 영웅전설1>의 오프닝 동영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요즘 기준에서 보면 별 거 아닌 동영상이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만화영화 수준의 애니메이션과 음성이 게임에서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고 멋진 일이었다. 이는 다른 게임기와 달리 CD-ROM을 채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게임기들은 기기내에서 나오는 조잡(?)한 배경음악인데 반해 PC엔진 CD게임들은 CD 오디오를 직접 재생해서 노래까지도 들려주었다. 8비트 게임기였지만, 막강한 애니메이션 효과와 음성 덕에 기존 게임기를 훨씬 능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원래 PC엔진은 별매인 CD-ROM을 본체에 끼워서 사용하는 게임기였는데, 새로 나온 PC엔진 듀오는 멋진 디자인에 CD-ROM과 일체형으로 나와 인기를 모았다. 듀오의 디자인은 지금 관점에서 봐도 굉장히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본체와 게임CD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학생인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시간이 지나 슈퍼패미콤과 UFO의 조합이 지겨워질 무렵, PC통신 장터에 PC엔진 듀오와 슈퍼패미콤&UFO를 바꾸자는 글이 올라 바꾸게 되었다. 교환날짜가 94년 5월로 기억하는데, 한국축구대표팀과 카메룬 사이의 1차평가전이 있던 날이었다. 좋아하는 축구 시청도 제쳐두고 PC엔진 듀오가 고속버스 화물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전전긍긍하다 2시간 늦게 받았을 때 감격이란!! 그 뒤 슈퍼패미콤과 UFO를 내려보내고 집에서 듀오를 즐겼다.

듀오는 패미콤처럼 복사게임이 존재하지 않아 정품게임CD를 살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게임구매에 신중을 기했고 UFO 때처럼 많은 게임을 할 수는 없었다. 만일 당시에 컴퓨터 CD-RW가 있었더라면 복사CD가 널리 퍼졌을 것이다.

당시 즐겼던 게임은 <야와라>, <건버스터 vol.2>, <마크로스2036>, <에메랄드 드래곤>, <도키메키 메모리얼>, <천외마경2>, <랑그릿사> 등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어를 잘 못해서 사전을 찾으며 열심히 했다. 하지만 유지비가 많이 들고, 게임CD도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슈퍼패미콤&UFO로 다시 교환하고 말았다. 이때 교환한 UFO는 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모델이라 결과적으로는 이익을 본 셈이었다.
또 PC엔진 게임들은 일본어를 모르면 즐기기가 어려운 어드벤처나 RPG게임이 대부분이라 액션이나 스포츠게임을 좋아하는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즐기기엔 맞지 않았다. 그들은 "PC엔진 듀오는 너만을 위한 게임기야" 하면서 슈퍼패미콤의 재영입을 반겼다.

금새 떠나보낸 것이 아쉽지만, 기존 게임기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 시대를 앞서간 게임기였다.

2008-10-03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

내가 가졌던 게임기 중 최고로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기를 꼽으라면 닌텐도의 <패미컴>이다. 그때까지 MSX1의 저용량 게임을 주로 즐기던 나에게 패미컴의 다양한 게임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드래곤볼Z 시리즈>, <록맨3>, <캡틴 츠바사2>, <열혈고교 시리즈>, <닌자용검전>,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SD건담 시리즈>, <슈퍼 마리오3>, <삼국지1> 등이 이때 밤새면서 즐겼던 게임이었다.

세월이 지나 8비트 게임기 시대가 가고 16비트 게임기 시대가 왔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였다. 확실히 그래픽은 패미컴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지만, 게임이 다양하지 못하고 비싸서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쉽게 보급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메가드라이브 게임이 늘고, 가격도 10만원 초반으로 떨어지자 동생과 나는 가진 돈을 합쳐서 메가드라이브와 조이스틱 그리고 <에어로 블래스터>, <헤어초크 츠바이>를 샀다.


패미콤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픽과 음악이 나를 즐겁게 했다.

메가드라이브에서 재밌게 즐겼던 게임을 꼽으라면, <헤어초크 츠바이>, <삼국지2>, <슈퍼대전략>, <레슬볼>, <샤이닝포스>, <썬더포스3>, <엘레멘탈 마스터>, <YS3> 등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장 사고 싶었던 게임기는 메가드라이브가 아닌 슈퍼패미컴이었다. 왜냐하면 패미컴 시절 즐겼던 대작 게임들의 속편이 슈퍼패미컴으로 속속 나왔고, 본체의 디자인이나 성능도 메가드라이브보다 앞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드래곤볼Z 초사이야인 전설>이 슈퍼패미컴에 있다는 점이 너무나 끌렸다. 그러나 20만원에 육박하는 본체 가격과 복제팩이 없어 비싼 정품롬팩 가격은 학생인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슈퍼패미컴 게임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메가드라이브 게임은 그 수가 슈퍼패미컴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또한 닌텐도의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게임이 슈퍼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 양쪽에 나와도 슈퍼패미컴판에는 '슈퍼'가 붙어서 나왔기 대문에 뭔가 더 좋아보였다(게임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RPG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할만한 RPG가 별로 나오지 않는 메가드라이브는 20% 정도 부족한 게임기였다. 스퀘어, 에닉스, 캡콤, 코나미 같은 제작사들도 슈퍼패미컴에만 좋은 게임을 냈다. 메가드라이브에는 세가를 비롯한 몇몇 제작사만이 고군분투하고 있어서 게임 발매수가 딸렸다.


당시 인기 최고였던 <스트리트 파이터2>도 슈퍼패미컴에서 가장 먼저 출시되고 메가드라이브에는 한참 지나서야 나왔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다만 처리속도는 메가드라이브가 더 나았다. 그것은 나중에 슈퍼패미컴으로 <대전략 익스퍼트>를 해보고 알았는데, 컴퓨터의 처리속도가 메가드라이브의 <슈퍼 대전략>에 견주어 현격하게 느렸다. 그래서 메가드라이브에는 빠른 처리속도가 필요한 슈팅이나 엑션게임이 많았다.

요즘 에뮬로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컴 게임을 해보고 느낀 것은 메가드라이브 게임기 자체가 슈퍼패미컴보다 그리 떨어지는 기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색감은 개인적으로 어둡고 어른스러운 메가드라이브 쪽이 마음에 든다. 색감과 분위기가 어두운 편인 <파이널 판타지6>의 경우에는 슈퍼패미컴보다는 메가드라이브에 더 어울리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패미컴만큼 게임들이 더 다양하고 나오고, 세가가 스퀘어나 에닉스 둘 중에 하나만 잡았어도 당시의 나한테서 내쳐지지는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게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