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만화가게에서 봤던 만화 중에 아주 재미있게 본 작품이 '바벨 2세'였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만화인 줄 알았고, 왜 이렇게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 작품이 '보물섬'이나 '소년중앙' 같은 당시의 인기만화잡지에는 연재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을 품기도 했다. 훗날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일본만화라는 것을 알고 나서 마치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우리나라에는 '삼국지'나 '도쿠가와 이에아스' 같은 역사만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올드팬이라면 아마도 이 작가의 작품 중에 '바벨 2세'를 가장 많이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그 '바벨 2세'보다도 더 재미있게 본 작품이 바로 '마즈'다. 어린 시절 해적판으로 본 기억을 잊지 못해, 최근에 원본을 구했다. 시원시원하게 큰 판형을 원했지만, 내가 구한 것은 작은 판형이라 좀 아쉽다. 어린 시절 본 해적판은 이보다는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용은 이렇다. 화산 폭발로 '마즈'란 소년이 긴 잠에서 깨어난다. 마즈는 수백만년전 외계인들이 지구에 남겨놓은 인조인간으로 지구인들의 문명이 우주 평화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면, 거대로봇 가이아에 내장된 폭탄을 터뜨려 지구를 멸망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보다 일찍 깨어난 탓인지 마즈는 기억을 모두 잃고 있었고, 인간의 가정에서 따뜻함을 느낀 마즈는 인간은 위험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마즈 말고도 지구멸망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이 또 있었으니 그것이 '육신'이다. 인간이 위험한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여섯 인조인간과 마즈는 인류 멸망이 아닌 보호를 위해 싸우게 되는데, 나중에 육신의 로봇들이 다 파괴되어도 가이아의 폭탄이 작동된다는 사실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치닫는데, 어린 시절 그 갑작스런 결말 때문에 충격을 받고 일주일 내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로봇들이나 메카닉의 디자인도 아주 괴이한데, 당시에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 참 놀랍고, 그것이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 같다. 마즈의 첫번째 부하로봇 타이탄이 허무하게 파괴되는 장면에서도 주인공 로봇이면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는 어린이 로봇 만화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옛날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전쟁과 살인을 일삼는 인류에 대한 경고'라는 철학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즈가 발표되었던 70년대가 일촉즉발의 냉전시대였던 점이 작품의 메세지에 영향을 미쳤고, 작가는 당시 소년소녀들에게 전쟁에 대한 경고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작품이 발표된 지 3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인류의 전쟁과 환경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이야말로 무서운 괴물이다"는 육신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마즈가 처음 등장할 때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 어린 시절에는 괴이하게 느꼈음.
*1권 초반부 5쪽 분량에서만 마즈 머리색깔이 엷다. 작가가 검게 칠하는 걸 잊은 건지?
*육신들이 모여서 지구멸망을 기다리는 최후의 만찬 장면. 시간이 되어도 멸망을 안 하니까 표정들이 싹 바뀌면서 마즈를 없애러 간다.
*육신 중에서는 스핑크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뜨거운 온도의 발을 물에 담궈서 마즈를 삶아버리려는 장면이 제일 인상적.
*마즈의 부하로봇 가이아가 두 발로 걸어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 발은 장식용?
*등장인물 중에 여자라고는 초반에 나오는 의사 외동딸 하루미뿐이다. 마즈하고 연애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론 마즈가 하루미를...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는데,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을 고쳐버려서 작품을 완전 말아먹었다.
2007-11-25
2007-11-10
슈퍼로봇대전 컴플리트 박스 PS1
갑자기 옛날 슈퍼로봇대전이 하고 싶어져서 플스1용으로 나왔던 <슈퍼로봇대전 컴플리트 박스>를 실행했다.
한 타이틀에 제2차~3차 슈퍼로봇대전과 외전인 EX가 함께 들어있는 리메이크판이다. 순서대로 클리어한 다음에는 4차 슈퍼로봇대전의 리메이크판인 <슈퍼로봇대전F>를 해볼 생각이다.
옛날 슈퍼패미콤판보다 좋은 점은 전투장면에서 음성이 나온다는 것이고, 시스템도 좀더 편리하게 개선되어 있다.
전투장면에서 로봇의 관절이 움직이는 알파 시리즈에 견주면, 움직임이 없는 전투장면이 초라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하지 않으면 눈높이가 올라가서 아마 평생 다시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알파 시리즈보다 개인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부분은 스토리 장면이 짧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온 것들은 뭔 텍스트가 그리 많은지, 동급생 같은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듯하다. 텍스트가 많으면 읽기가 지겨워져서 그냥 스킵해버리는데, 옛날 슈퍼로봇대전은 텍스트 장면이 짧아서 부담이 없다.
<제2차 로봇대전>의 경우는 옛날에 게임보이판 <제2차 로봇대전G>로 클리어했는데, 플스판은 건담G 시나리오가 빠져있었다. 또, 그레이트마징가가 나오긴 하지만, 원래 조종사가 안 나오고, 마징가Z의 쇠돌이(코지)가 그냥 타는 점이 희한했다. 스토리도 3차나 4차에 견주면 단순한 편이고, 분기도 없다. 역시 본격적인 재미는 3차부터인가.
한 타이틀에 제2차~3차 슈퍼로봇대전과 외전인 EX가 함께 들어있는 리메이크판이다. 순서대로 클리어한 다음에는 4차 슈퍼로봇대전의 리메이크판인 <슈퍼로봇대전F>를 해볼 생각이다.
옛날 슈퍼패미콤판보다 좋은 점은 전투장면에서 음성이 나온다는 것이고, 시스템도 좀더 편리하게 개선되어 있다.
전투장면에서 로봇의 관절이 움직이는 알파 시리즈에 견주면, 움직임이 없는 전투장면이 초라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하지 않으면 눈높이가 올라가서 아마 평생 다시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알파 시리즈보다 개인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부분은 스토리 장면이 짧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온 것들은 뭔 텍스트가 그리 많은지, 동급생 같은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듯하다. 텍스트가 많으면 읽기가 지겨워져서 그냥 스킵해버리는데, 옛날 슈퍼로봇대전은 텍스트 장면이 짧아서 부담이 없다.
<제2차 로봇대전>의 경우는 옛날에 게임보이판 <제2차 로봇대전G>로 클리어했는데, 플스판은 건담G 시나리오가 빠져있었다. 또, 그레이트마징가가 나오긴 하지만, 원래 조종사가 안 나오고, 마징가Z의 쇠돌이(코지)가 그냥 타는 점이 희한했다. 스토리도 3차나 4차에 견주면 단순한 편이고, 분기도 없다. 역시 본격적인 재미는 3차부터인가.
2007-11-03
두개골의 서 The Book of Skulls
환상특급 에피소드 중 하나인 "있어도 없는 사람"의 원작자, 로버트 실버버그의 소설.
실버버그는 SF소설가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 책은 사실 SF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부분이 없다. 네 명의 청년들이 영생을 얻고자 여행을 떠나는데, 그 영생을 얻는 의식에는 네 명이 필요하고 한 명은 자살하고 한 명은 살해당해야 나머지 둘의 영생이 이루어진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이 네 명 중에는 그것을 믿는 청년도 있었고, 그냥 재미삼아 가는 청년도 있었다.
소설은 이 네 명의 시점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특이한 형식이었는데, 번역의 수준은 각기 다른 그들의 말투까지 담기에는 좀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영생을 얻었느냐 하는 점인데, 독자의 상상과 추측에 맡기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작가의 초점이 '영생'이 아니라 인생의 아이러니함, 죄값 치루기 등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로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흥행보다는 소수의 매니아들을 만족시키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기는 하는데, 남들에게 추천할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실버버그는 SF소설가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 책은 사실 SF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부분이 없다. 네 명의 청년들이 영생을 얻고자 여행을 떠나는데, 그 영생을 얻는 의식에는 네 명이 필요하고 한 명은 자살하고 한 명은 살해당해야 나머지 둘의 영생이 이루어진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이 네 명 중에는 그것을 믿는 청년도 있었고, 그냥 재미삼아 가는 청년도 있었다.
소설은 이 네 명의 시점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특이한 형식이었는데, 번역의 수준은 각기 다른 그들의 말투까지 담기에는 좀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영생을 얻었느냐 하는 점인데, 독자의 상상과 추측에 맡기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작가의 초점이 '영생'이 아니라 인생의 아이러니함, 죄값 치루기 등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로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흥행보다는 소수의 매니아들을 만족시키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기는 하는데, 남들에게 추천할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EVE burst error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은 역시 그림이 좋냐 나쁘냐에 성패가 달려있는데, <EVE burst error>는 그런 점에서 무척 만족스러운 그림을 보여주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마리나의 원화가 마음에 든 것이 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였다.
처음에는 95년에 발매된 원작인 PC9801판으로 했는데, 당시 게임 파일에 문제가 있어서 중도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윈도우판을 구하게 되었고, 진행될수록 흥미를 더해가는 시나리오에 빠져들어 며칠 동안 붙잡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EVE 시리즈는 추리물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거의 SF나 오컬트로 빠지게 되어서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심리서스펜스SF물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공은 게을러보이지만 명석한 탐정 고지로와 섹시하지만 냉철한 비밀요원 마리나이며, 그 두 주인공의 시점이 번갈아 바뀌면서 게임이 전개된다. 게임선전에서는 '멀티사이드 시스템'이다, 뭐다 하면서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그렇게 내세울 만큼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시스템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주인공이 중간중간 바뀌는 것뿐.
후반부에 등장인물 중 하나가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을 정도로 슬펐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아주 좋아서 대사를 녹음하기도 해서 듣고 다니곤 했다.
게임의 후반부에는 범인 이름을 입력해야 하는 질문이 나와서 막혀서 헤매다가 결국 공략집을 이용했는데, 그때 범인의 정체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해본 사람 대부분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시나리오는 두 주인공이 아닌 범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이 이채로웠다. 범인의 슬픈 심리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원작 PC9801판에는 미성년자관람불가 장면이 나오는데, 내용에는 있으나 없으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장면들이라 후에 나온 윈도우판이나 가정용 게임기판에는 그 장면들이 순화 또는 삭제되어 있다.
뒤에 나온 후속작들은 시나리오 작가가 바뀌어서 그런지, 전작보다 훨씬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여주어서 아쉽다.
그 후속작들 중 가장 최근작은 <EVE New Generation X>인데, 내용이 복잡하고 난해한 소재들이 나온다. 처음과 중반부까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후반부에 너무 설명조에다가 억지로 끼어맞춘 느낌이 드는 줄거리가 아쉽다.
후속작은 평작 또는 그 이하이지만, 가장 먼저 나온 <EVE burst error>가 이쪽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의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95년에 발매된 원작인 PC9801판으로 했는데, 당시 게임 파일에 문제가 있어서 중도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윈도우판을 구하게 되었고, 진행될수록 흥미를 더해가는 시나리오에 빠져들어 며칠 동안 붙잡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EVE 시리즈는 추리물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거의 SF나 오컬트로 빠지게 되어서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심리서스펜스SF물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공은 게을러보이지만 명석한 탐정 고지로와 섹시하지만 냉철한 비밀요원 마리나이며, 그 두 주인공의 시점이 번갈아 바뀌면서 게임이 전개된다. 게임선전에서는 '멀티사이드 시스템'이다, 뭐다 하면서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그렇게 내세울 만큼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시스템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주인공이 중간중간 바뀌는 것뿐.
후반부에 등장인물 중 하나가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을 정도로 슬펐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아주 좋아서 대사를 녹음하기도 해서 듣고 다니곤 했다.
게임의 후반부에는 범인 이름을 입력해야 하는 질문이 나와서 막혀서 헤매다가 결국 공략집을 이용했는데, 그때 범인의 정체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해본 사람 대부분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시나리오는 두 주인공이 아닌 범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이 이채로웠다. 범인의 슬픈 심리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원작 PC9801판에는 미성년자관람불가 장면이 나오는데, 내용에는 있으나 없으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장면들이라 후에 나온 윈도우판이나 가정용 게임기판에는 그 장면들이 순화 또는 삭제되어 있다.
뒤에 나온 후속작들은 시나리오 작가가 바뀌어서 그런지, 전작보다 훨씬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여주어서 아쉽다.
그 후속작들 중 가장 최근작은 <EVE New Generation X>인데, 내용이 복잡하고 난해한 소재들이 나온다. 처음과 중반부까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후반부에 너무 설명조에다가 억지로 끼어맞춘 느낌이 드는 줄거리가 아쉽다.
후속작은 평작 또는 그 이하이지만, 가장 먼저 나온 <EVE burst error>가 이쪽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의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